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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2022년 첫날

새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후다닥 집밖으로 뛰어나가 심호흡을 하고 “굳 모닝 2022!” 외쳤다. 구름이 하늘을 꽉 잡고 있어서 떠오르는 해는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맑은 새벽의 기운이 상큼해서 좋았다. 일단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 첫날과 인사했으니 올해 일어날 멋지고 근사한 일들을 맞을 마음 준비는 됐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니 일찍 일어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사위가 놀랐던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새해인사 했어” 하고 내 오랜 습관을 말하니 사위가 깔깔 웃었다. 자기는 아이와 벌써 밖에 나가서 “새해인사” 하고 들어왔다면서 앞으로 자신도 그렇게 할거라 했다. 영국인 둘째 사위는 나와 정서 코드가 잘 맞아서 딸보다 더 가깝다고 느낄 적이 있는데 이런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남편과 딸은 잊고 사위와 나는 뜨거운 차를 마셨다.     맛있는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자정에 먹지 못한 메밀소바를 점심으로 준비했다. 한국과 일본의 새해 관습은 이렇게 우리집에서 지켜진다. 저녁은 사위가 준비한 유럽식 콜드 컷인 하몽, 프로슈토와 코파에 다양한 치즈를 먹었다. 다문화 가족이 즐기는 여러 음식을 나는 비빔밥처럼 좋아한다. 올해는 내가 연말에 걸린 감기로 휘청거려서 였던지 코믹한 사건을 일으켜서 모두에게 웃음거리를 선사했다. 점심때 소바 소스에 와사비를 풀고 무 갈은 것도 잘 섞고 뒷밭에서 자라는 쪽파를 다져서 올린 디핑 소스를 각자 앞에 놓았다.      메밀국수 맛을 처음 보는 아이가 긴 국수를 입안에 넣었다 끄집어내는 것을 보는데 먼저 점심을 먹기 시작한 남편이 “엥?” 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마침 국수를 입안에 넣으려던 딸과 사위도 동시에 행동을 멈췄다. 나는 정성껏 준비한 음식에 초를 치는 남편을 곱지않은 눈길로 봤다. 소스 맛을 보라는 남편의 불평에 따라 내 앞의 소스를 맛보고 나도 깜짝 놀라 부엌으로 갔다. 카운트 위에 있는 소스 병은 소바 소스가 아니라 폰주 소스였다. 살면서 이런 실수도 하는구나 하고 한숨을 쉬는데 딸에게 “네 엄마 이제 늙었어” 하는 남편의 투덜거림이 마치 “앞으로 네가 부엌을 맡아라” 로 들려서 웃음이 나왔다.       매년 새해마다 하던 새로운 각오나 계획은 몇 년 전부터 포기했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랑하며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살기로 작정하니 정신적인 부담이 없고 마음도 자유로워서 좋다. 그런데 연말에 덴버에 사는 대학 동기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나온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물은 것이 아직도 내 의식을 잡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하던 질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 이라고 답을 했더니 친구가 100점을 줬다. 가만히 생각하니 톨스토이는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친구에게 정답을 물었다. 첫번째 나의 답은 맞았고 두번째 질문,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앞에 있는 사람’, 그리고 세번째 질문인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하고, 사랑하는 일’ 이 정답이었다. 나이 70이 되어가도 아직 지혜가 한참 부족한 나의 어리석음을 마음이 깊은 옛 친구는 곱게 받아줬다.      솔직히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그를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톨스토이의 철학은 만고의 진리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필연으로 마주섰다. 그 사람이 누구라도 싫던좋던 그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는 알고 있지만 복잡한 감정의 편파들이 양파처럼 겹겹이 마음의 문을 가둬두고 있어서 행동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연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얼굴 표정을 가린 관객들 앞에서 열연하던 배우들처럼 나도 내 편견의 테두리를 묵살하고 무조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삶의 한 가운데서 그레이 수필가 소바 소스 디핑 소스 점심때 소바

2022-01-13

[삶의 한 가운데서] 석류와 직소 퍼즐

해마다 이때쯤이면 석류를 잔뜩 산다. 올해도 붉고 먹음직스런 빛 좋은 석류를 구했다. 석류를 하나 까니 잘 읽은, 루비처럼 반짝이는 알갱이들이 속에 꽉 차있다. 빈틈없이 들어선 알갱이들을 살살 만지며 하나하나 떼어서 그릇에 담으면 마치 하늘의 별을 잡은 착각이 들고 저절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 구절이 입에서 나온다.      ‘…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12월 중순이다. 한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며 추억과 사랑, 쓸쓸함과 동경, 그리고 시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여기에 보탤 것이 없다. 추억과 사랑은 내 속에 잠자고 쓸쓸함과 동경은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감각으로 바뀔테고 시는 생활속에 있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멀리 계신다. 하늘의 별이 되신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다.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과오를 후회하며 살다가 ‘어머니’ 단어가 나타나면 내 감각은 젖어버린다. 그리고 어머니와 만든 어떤 아름다운 추억도 그리움을 달래지 못한다.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친구는 가끔 힘이 든다고 실토한다.  어머니가 엉뚱한 고집을 피우시면 그녀의 인내심이 테스트를 받는다면서 허전하게 웃는 친구에게 “너의 행복한 불평을 진심으로 질투한다” 했더니 깔깔 웃었다. 오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있다. 살아계시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축복을 가진 것을 현명한 그녀는 안다.     입안에 상큼한 향기를 가득 채워주는 석류를 혼자 먹는 것이 아쉽다. 석류에 칼집을 내어서 살짝 비트니 그 안에 빼곡히 숨은 속살같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접시에 쌓인 석류 알갱이에 가을의 정취가 뭉클하다. 많은 추억과 사랑이 탄탄하게 익었다. 뭉쳤다가 하나로 흩어진 석류 알갱이들과 달리 하나에서 단체로 변신하는 것은 내가 즐기는 직소 퍼즐이다. 수많은 조각들이 방향 잃은 미아로 정체성이 없다가 하나씩 자리를 찾아가면서 조금씩 모습을 들어낸다. 모든 피스가 정확히 제자리를 찾아 들어앉아야 비로서 완벽한 하나가 된다. 그렇게 각 조각은 사람들이 의존하며 사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거다.    지난 2년 미친듯이 직소 퍼즐을 했다.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니 지구 곳곳의 멋진 정경과 아름다운 명화를 내 집으로 끌어들였다. 긴 식탁의 한쪽에는 언제나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상주했다. 어려운 수도쿠 풀듯이 도전을 주는 퍼즐에 집중하면서 세상 시름을 잊었다. 그리고 허튼일에 시간 낭비한다고 핀잔을 주는 남편에게 The Great Courses CD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퍼즐은 곁들인 반찬이라고 반박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하얀 백지에 선을 긋기 시작하면 그 선은 다른 선과 이어져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에게 선이 되어 줄 수 있는 배려를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 아이는 어느 사이에 성인이 되고 생활인이 되어 인생의 사계절을 산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인생의 나이를 사계절로 나누어서 각 계절마다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을 주문처럼 읊는 것은 어떻게 살아라 하는 안내가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야하는 자세를 일깨우는 인생 교훈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면 미미한 것이지만 석류 알갱이 하나와 직소 퍼즐 하나에도 내 자리가 있다. 내 삶의 의미가 있다.     인생의 겨울을 맞으면서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며 과거의 어느 순간을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처럼 올해 내가 선택한 크고 작은 결정들이 연말이면 마치 심판대에 선 기분이 들게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 시’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처럼 나도 하늘을 보며 부끄럽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했다. 왠지 올 연말에는 윤동주 시인이 자주 나를 찾아온다. 어쩌면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을 찾는 것이 새해의 내 목적인 지도 모른다.              삶의 한 가운데서 석류 직소 석류 알갱이들 직소 퍼즐 퍼즐 조각들

2021-12-16

[삶의 한 가운데서] 미스 에밀리의 스토리

지난 8월부터 함께 운동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인상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둘째 사위의 할머니와 같은 분위기라 처음부터 마음이 열렸다. 매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사귀니 그녀가 자신은 영국 이민자며 이름은 ‘에밀리’라 했다. ‘폭풍의 언덕’을 쓴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가 떠올라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언젠가 운동을 하다가 몇 사람이 힘이 든다고 살살 불평을 토해내니 강사가 나이를 들먹였다. 자신은 70세인데 “당신은 몇 살이냐?” 차례대로 묻다가 막상 미스 에밀리가 88세라 하자 모두 놀라서 입을 꽉 닫았다. 불평없이 잘 따라서 운동하는 그녀는 그날부터 함께 운동하는 그룹의 영웅이 됐다. 모두 그녀의 건강을 부러워하며 이것저것 물으니 그녀는 발레를 67년동안 가르치다가 올 7월에 퇴직한 젊은 노인이었다. 영국 리버풀 근교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미스 리버풀’ 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발레가 좋아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만 둘 줄을 몰랐다는 그녀는 대단한 욕심꾸러기였다. 더구나 아침에 깨어나 세수만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 나의 부수수한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그녀는 매일 머리 손질도 잘 하고 손톱 발톱도 빨간 매니큐어로 다듬고 간혹 립스틱도 바르고 운동하러 온다. 그녀의 깔끔한 외모 앞에서 나는 기가 죽는 날이 많지만 그녀의 나이가 되어도 내가 그렇게 단정하게 가꾸고 살기를 바라게 됐다.     우리는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다가 누가 하루 운동을 빠지면 서로의 근황을 챙겼다. 그러다가 이제는 밥을 같이 먹는 지인이 됐다. 그녀를 보면 마치 영국 여행중에 만났던 사위의 할머니와 마주 앉은 듯 편안하다. 헤어지면서 “내 손자를 부탁해” 하던 그녀의 얼굴이 미스 에밀리로 바뀐 듯 착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가진 스토리에 난 언제나 자석처럼 끌린다. 영국에 주둔한 미 공군 군인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미국으로 온 미스 에밀리는 나와 같은 공군 가족이다. 결혼한 다음해 큰딸을 낳고 이어서 줄줄이 5명을 낳았다. 큰딸이 8세 된 해, 그녀가 결혼한 지 9년째 되던 해 남편이 뇌수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어린아이 다섯을 혼자 키워야 했을 적에 친정 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셨다. 그때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물에 빠져 죽던지 아니면 헤엄쳐서 살아라” 했다.     그 조언을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돈 벌며 바쁘게 사느라 전혀 다른 생각을 못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한 공군을 만났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 된 좋은 남자는 다섯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줬다. 덕분에 아이들이 잘 성장한 것을 그녀는 감사해 했다. 친 아버지 기억을 못하던 아들 딸들이 따르고 사랑하던 그녀의 두번째 남편도 9년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녀는 혼자가 됐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다섯명의 아이들이 그녀에게 15명의 손주를 안겨줬고, 다시 15명의 손주들은 25명의 증손주를 안겨줬다. 복 많은 여인이다. 내가 성경의 창세기에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것을 “당신은 착실하게 잘 실천했다” 했더니 그녀는 크게 웃었다.     내가 스모키 마운틴 중턱의 캐빈에서 신선한 산의 정기를 받으며 딸네들 가족과 모여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내 삶의 가을을 감사하는 동안 미스 에밀리 역시 플로리다에서 바닷바람을 받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장성한 자식들과 후손들, 대가족이 모여서 그녀의 삶을 축하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진정 멋지고 풍성한 감사의 수확을 거두자고 서로에게 다짐했었다.   얼마전에 89 생일을 맞았던 미스 에밀리는 연말에 플로리다로 떠난다. 그곳에 집을 짓는 딸네로 이사 들어가서 딸과 함께 바닷가 동네에서 아름답게 살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재미있다. 오래전 내 딸이 발레를 배울 적에 분명 미스 에밀리가 가르쳤을 것이고 올해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나는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녀가 “절대로 운동을 그만두지 마” 한 조언을 따라서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을 지킬것이다.             삶의 한 가운데서 에밀리 스토리 미스 에밀리 소설가 에밀리 미스 리버풀

2021-12-02

[삶의 한 가운데서] 시, 삶의 동반자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 처연한 모습을 외면하려고 해도 곳곳에 흩어져 몸부림치는 가랑잎들이 내 그림자 되어 따라다닌다. 그런데 집안에서도 우수수 떨어져 눈에 밟히는 또 다른 낙엽을 본다. 소리없이 빠져서 곳곳에 흩어진 내 머리카락이 마치 뜰에 흩어진 낙엽처럼 힘이 없다.    겨울이 지나면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지만 내 머리카락은 아니다. 겨울이 오는 것이 겁난다. 가끔 예전에 머리숱이 많아 동여맸던 기억이 희미해서 잠자다 깨어나 어둠속에서 허덕인다. 그렇게 내일이 두려워서 숨죽이고 새벽을 기다리는 시간에 나와 함께 해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 동서고금의 많은 시들이다.     시를 앞세우고 밖의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온 시기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때였다. 시세계에 눈이 뜨인 사춘기시절을 떠올리면 기쁨과 슬픔의 어떤 순간에도 언어들의 아리아가 줬던 흥분이 느껴진다. 멋진 사실은 어떤 상황에도 내 마음을 움직인 시가 있었다. 혼자 시구절을 크게 읊고 또 읊으면 메아리되어 돌아오는 동류감이 있다. 그당시 좋은 시를 카드에 적어서 책상서랍에 차곡차곡 쌓아 뒀다가 생각나면 골라 읽었는데 한국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했던 카드들과 헤어졌다.   이민생활 힘들 적에 버틸 힘을 준 것도 시였다. 특히 열심히 되새김을 많이 했던 시구절은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였다. 고향이 그리울 적에는 박목월의 ‘나그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에 갈등이 생겼을 적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나를 달랬다. 그리고 혼란에 빠졌을 적에 우습지만 내가 기댄 것은 남편의 등이 아니라 이해인 수녀님의 시 ‘풀꽃의 노래’ 였다. 그렇게 살면서 계절마다 잔잔한 시냇물처럼 내 속에 흐르던 좋은 시 구절들로 위로를 받고 지혜를 얻었다.    한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 ‘길가메쉬’에 집중했었고 또 언젠가는 중국의 두보나 일본의 하이쿠에 반한 적도 있었다. 칼 샌드버그의 시를 읽으면 마치 이웃을 걷는듯 편안했던 시절은 미국생활에 익숙해지고 나서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 반했다가 셰이머스 히니가 안내한 아름다운 자연에 푹 빠져서 아일랜드를 사랑한다. 내가 선호하는 시는 엄격한 절제를 중시한 것보다 구름에 달 가듯이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어느 순간 내 가슴에 확 안긴 사람과 자연을 화합시킨 구절들이 긴 여운을 남겼다.    군대생활 힘겨웠던 시절 퇴근 후 저녁에 부대 안에서 운영하던 Central Texas College에서 14세기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공부했다. 고어에 버벅거리다 강의실을 나서며 하늘의 별을 많이 봤다. 많은 주인공들이 풀어놓은 스토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별처럼 잡히지 않아 원망스러웠다. 밤늦게 집에 오면 나를 기다리다 잠든 어린 딸들에게 미안했다. 그때 캔터베리 이야기를 공부하며 내가 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 체험들이 나를 지켜준 에너지원이었고 시가 내포한 많은 의미는 내 삶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밝혀줬다.     얼마전부터 몽고메리에 사는 한인 여인 몇 사람과 정기적으로 만나 수다 모임을 갖는다. 매번 다른 이슈를 가지고 만나서 각자의 의견을 나누니 주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깨어있는 의식되어 좋다. 생활에 활력을 준다. 마침 지난주의 주제가 ‘가을의 시’ 였다. 사랑, 외로움과 그리움이 감상적인 아름다운 시를 통해서 여인들의 마음을 잡았다. 모국을 떠난 시기가 달라서 감성을 함께 공유하지 못해도 아름다운 시들이 옛추억을 불러와서 포근한 시간을 가졌다. 모두의 삶에 시가 있어 좋았다.     내 집의 곳곳에 붙어있는 시 구절들을 오가며 슬쩍 한 단어만 봐도 그 다음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서 집안을 어슬렁거린다.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는 구절이나 가슴에 기쁨을 꽉 채워주는 구절도 좋지만 평안을 주는 구절이 더 좋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만든 추억이 내 마음을 좌지우지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속에 가득 찬 별처럼 반짝이고 영롱한 시들은 내 삶의 동반자다.      요즈음 데이비드 로마노의 시 ‘나 없이 내일이 시작된다면’ 읽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편안하게 마주본다. 이제는 인생의 겨울이 도도새가 아님을 분명히 안다.        영 그레이 / 수필가삶의 한 가운데서 동반자 그레이 아일랜드 시인 캔터베리 이야기 시인 제프리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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